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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 (The Room Next Door, 2024) 결말 포함 후기책, 영화 리뷰 2024. 11. 7. 19:39
오랜만의 나들이에 집에 일찍 들어가기는 싫고 무작정 걷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시간에 상영하는 영화를 찾다 보니 '룸 넥스트 도어'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틸다 스윈튼이 나온다. 잠깐의 검색으로 알게 된 사실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연출을 했고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라는 것이다. 그럼 볼 만은 하겠지 하고 표를 끊었다. 영화는 베스트셀러 작가 잉그리드(줄리앤 무어)의 책 사인회에서 시작한다. 잉그리드는 사인회를 찾아온 친구를 통해 옛 잡지사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마사(틸다 스윈튼)가 말기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얼마 후 잉그리드는 마사의 병실을 찾고, 마사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딸과 어떻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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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말묵상 2023. 1. 23. 16:11
"우리 딸, 아빠가 미안해.” 아버지가 몇 번이고 나에게 했던 말. 무척 슬픈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2005년의 겨울이었다. 당시 대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부모님은 가끔 주말에 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오시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늘 그렇듯 함께 캠퍼스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려는데, 그 날따라 어쩐지 머뭇거리셨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한적한 골목,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춰 섰다. 아버지가 할 말이 있다며 힘겹게 입을 떼셨다. 사실 관리하던 회사 돈이 잘못 되었는데,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애썼는데, 잘 안 됐다고 하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버지는 마치 머리 속에서 해야할 말을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일단은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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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노한다끄적끄적 2023. 1. 17. 12:14
나는 분노한다.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개개인, 내가 사랑하는 이들, 특히 소수의 가치가 권력의 여러 형태에 의해 희생 당할 때 나는 분노한다. 가깝게는 유독 가방끈 긴 사람들이 많던 한 모임에서 부모님을 은근히 무시하는 처사에 속이 상했고,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자질을 의심하는 교육계에 불편함을 느끼며,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고 학대 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울컥한다. 사실 이전의 나는 소수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유독 멍 때리며 혼자 놀기를 좋아하던 조금은 유별난 아이이긴 했지만, 한국 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피부색으로 태어나 다수의 언어를 모국어로 배웠으며, 평범한 가정 환경 가운데 별탈 없이 공교육 과정을 착실히 밟아 다수가 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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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선 생일 파티끄적끄적 2023. 1. 11. 14:32
1월 10일, 올해도 어김 없이 내 생일이 돌아왔다. 미국 유학을 시작으로 가족과 떨어져 자취 생활을 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언제서부터인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생일 아침마다 부모님과 함께 조촐한 랜선 생일 파티를 한다. 오늘도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부시시한 얼굴로 전화를 받으니 녹색 케이크가 영상 너머로 보였다. 함께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손뼉치며 노래를 부르시는 부모님의 해맑은 얼굴도 잊지 않고 캡처한다. 보통은 우리집 고양이 마오도 함께다. 케이크를 워낙 좋아해서 매년 먹지도 못할 케이크 앞을 비장한 표정으로 사수해 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마오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열 네 살이 된 할아버지 고양이 마오, 지난 달 갑자기 의식을 잃어 병원에 갔더니 뇌가 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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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총, <읽기의 말들>책, 영화 리뷰 2023. 1. 7. 07:47
_서지정보 박총, 『읽기의 말들』, 유유출판사, 2017. _저자정보 글 쓸 땐 작가, 교회에선 목사, 집에선 고양이 집사.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안해(아내)와 네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평소 꽃과 책을 즐긴다. 『밀월일기』 『욕쟁이 예수』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읽기의 말들』 등을 쓰고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이들 이야기 성경』 등을 옮겼다. _내용요약 ‘읽기’에 대한 120개 글귀를 인용하여 각 장마다 다양한 읽기의 방식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리적 목적만으로 하는 독서가 아닌 유희로서의 독서, 두루 읽기, 천천히 읽기, 잠잠히 읽기, 소리내어 읽기, 손으로 읽기, 몸으로 읽기, 혼자 읽고 함께 읽기 등 다양한 읽기의 방식을 제시하고, 활자를 넘어 사람, 자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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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끄적끄적 2023. 1. 3. 06:10
요즘 내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기분을 형용사로 표현하자면 ‘서투르다’인 것 같다. 지금 하는 일도 남들이 보기엔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갈수록 뛰어난 사람은 많고 더 부족함을 느낀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도 사람을 알면 알 수록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더 조심스러워지고 서툴러지는 기분이다. 그러다 '서투르다’의 사전적 의미를 네이버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1.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다루기에 설다 2. 전에 만난 적이 없어 어색하다. 개인의 성향, 감정보다는 행동과 상황에 대한 묘사다. 단지 익숙치 않은 상황들을 종종 맞딱뜨렸을 뿐인데, 그것이 어느덧 내 감정을, 내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을 지배해버렸다. 그 상황들 가운데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생각해 봤다. 하나님은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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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이야기 2끄적끄적 2022. 9. 6. 04:50
가끔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꿈을 꾼다. 침대에서 밍기적대는 와중 느껴지는 분주한 공기, 방 건너 희미한 부모님의 목소리,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착각을 하다 슬쩍 눈을 뜬다. 그러면 어김없이 눈에 들어오는 10평 남짓한 스튜디오의 흰 페인트 벽, 블라인드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적막한 햇빛. 몇 번을 다시 잠을 청하다 결국 일어나 덩그라니 남겨진 느낌을 어떻게든 소화해 보려 애를 쓴다. 한국에 가지 못 한 지난 3년 동안 유독 이 꿈을 많이 꿨던 것 같다. 혼자서 잘 해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리움이 쌓였었나 보다. 그러다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가 매일 아침 꿈 속의 풍경을 살았다. 달그락 소리에 방문을 열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아침 인사를 나누고 실없는 소리를 하며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