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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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말묵상 2023. 1. 23. 16:11
"우리 딸, 아빠가 미안해.” 아버지가 몇 번이고 나에게 했던 말. 무척 슬픈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2005년의 겨울이었다. 당시 대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부모님은 가끔 주말에 나를 보러 서울에 올라오시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늘 그렇듯 함께 캠퍼스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고 헤어지려는데, 그 날따라 어쩐지 머뭇거리셨다. 기숙사로 올라가는 한적한 골목, 가로등 불빛 아래 멈춰 섰다. 아버지가 할 말이 있다며 힘겹게 입을 떼셨다. 사실 관리하던 회사 돈이 잘못 되었는데, 혼자서 해결해 보려고 애썼는데, 잘 안 됐다고 하셨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어떻게 해야 하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버지는 마치 머리 속에서 해야할 말을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일단은 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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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의 모습묵상 2021. 10. 17. 08:22
요즘 부쩍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놀랍게도 최근 들은 말씀들을 통해 때에 맞게 응답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순종의 모습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기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증거판을 받아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애굽기 32:1) 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잠시도 인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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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감사하기묵상 2021. 9. 27. 12:16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오늘 예배에서 이 찬양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 한 주였는데, 정작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내 모습에 마음이 무너져내렸던 것 같다. 내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데, 하나님의 자녀로 이기적으로 살면 안되니까 억지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사실은 내 공허한 마음과 오랜 씨름을 하며 어떤 사람이 아닌 여호와 한 분만으로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내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기도해 왔었다. 중간 중간 소소한 응답도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에 집에 와서 유기성 목사님 말씀을 찾아 들었다. 우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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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중심묵상 2021. 9. 13. 23:04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8) 얼마전 큐티를 하면서 시쳇말로 뼈를 때렸던 말씀이다. 심고 거두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비유이다. 여기서 '심는다'는 것은 비단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모든 시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그동안 무언가를 거두기 위해 했던 나의 모든 노력과 고민들을 돌아보았다. 그것들이 '육체를 위하여' (NIV성경은 'to please their flesh'라고 번역한다) 심는 행위였던가,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to please the Spirit' [NIV]) 심는 행위였던가? 돌아보니 커리어에 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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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묵상 2021. 8. 26. 05:47
요즘 여기저기서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타인을 진심으로 돕고 사랑할 수 있는 여유 또한 가지게 된다.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 나는 낮은 자존감 가운데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났던 것 같다. 순수하게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 보다는 그 호의를 통해 내 인정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내가 주는 만큼의 반응, 혹은 그 이상을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실망했다. 내 외로움을 곧잘 채워주는 상대를 만났을 때 지나치게 의지하고 요구하게 되었고, 결국 나의 욕심이 관계를 어그러뜨렸다. 이런 건강하지 않은 관계의 악순환이 한계에 이르렀던 어느 날, 이기적인 내 모습이 보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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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져내다묵상 2021. 8. 4. 05:08
얼마 전 설교를 듣다 시간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헬라어로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크로노스' (Χρόνος)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떤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위안을 삼는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결국 물리적 시간의 흐름 속에 희미한 과거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인 '카이로스' (Καιρός)는 원어적으로 '기회,' '새기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흐름 속에서 한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는 유의미한 기회의 시간을 뜻한다. 그 유의미한 시간은 단순히 과거에 그치지 않고 우리 마음에 새겨져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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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 쓰기묵상 2021. 7. 21. 06:52
모든 일의 속사정이 드러난 이후에도 내 눈은 그것을 반박하는 증거들을 찾고자 바쁘게 움직인다. 작은 움직임, 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고민하는 이 과정의 반복이 결코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 멈출 수가 없다. 인내로 온전함을 이루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고 싶은 말을 애써 억누르지만 답답함은 쌓여만 간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이 상황이 꽤나 혼란스럽다. 이렇게 인내하는 과정이 주님이 일하심을 잠잠히 기다리는 과정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전전긍긍하며 현재의 상황이 변화하길 기다리는 내 모습 안에 주님의 자리는 있는 것일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내 중심은 결국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이 아닌가? 흔히들 말하는 기도해야할 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도하는 중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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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상반기묵상 2021. 7. 12. 06:04
하나님은 동떨어진 어떤 신적 존재가 아니라 나의 가장 작은 기도까지 모두 들으시고 세세하게 응답하시는 나의 아버지시다. 지난 반 년 간의 내 기도들을 돌아보면,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성경 구절을 통해, 찬양을 통해, 말씀을 통해, 구체적인 음성을 통해, 또 감춰졌던 일들의 드러남을 통해 주님의 뜻을 명백하게 보여주셨다. 여전히 내 속에는 이 모든 싸인들을 무시하고 끝까지 내뜻대로 해보고자 하는 오기가 있지만, 주님은 계속해서 믿음의 시련을 당할 때 인내함으로 온전함을 이루라 (약 1:2-4), 잠잠히 그의 하는 일을 보라 (시 46:10) 명령하신다. 지난 반년 계속해서 내 뜻과 주님의 뜻이 다름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 과정을 통해 완악한 나를 변화시켜 가심에 감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