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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총, <읽기의 말들>책, 영화 리뷰 2023. 1. 7. 07:47
_서지정보
박총, 『읽기의 말들』, 유유출판사, 2017.
_저자정보
글 쓸 땐 작가, 교회에선 목사, 집에선 고양이 집사. 고등학생 시절에 만난 안해(아내)와 네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평소 꽃과 책을 즐긴다. 『밀월일기』 『욕쟁이 예수』 『내 삶을 바꾼 한 구절』 『읽기의 말들』 등을 쓰고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의 아이들 이야기 성경』 등을 옮겼다.
_내용요약
‘읽기’에 대한 120개 글귀를 인용하여 각 장마다 다양한 읽기의 방식과 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리적 목적만으로 하는 독서가 아닌 유희로서의 독서, 두루 읽기, 천천히 읽기, 잠잠히 읽기, 소리내어 읽기, 손으로 읽기, 몸으로 읽기, 혼자 읽고 함께 읽기 등 다양한 읽기의 방식을 제시하고, 활자를 넘어 사람, 자연, 소리 등 이 세상 속 다양한 형태의 책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책을 단순한 객체가 아닌, 독자와, 이 세상의 다양한 텍스트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유기적 주체로 바라보는 작가의 애정어린 시선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_소감
마음 속이 복잡할 때 종종 책을 집어든다. 내 앞의 고민거리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도 있고, 때로는 문제에서 벗어나 단지 숨구멍을 찾는 심정으로 책을 집어들기도 한다. 가끔은 마음에 울림을 주는 글귀를 만나기도 하고 특별한 순간 없이도 가만히 혼자서 책장을 넘기는 것만으로 기분을 환기한다. 인상적인 글귀들을 인스타에 저장해두었다가 대화 중 떠오르는대로 나누기도 하고, 아끼는 지인들에게 책 선물을 하기도 한다. 책 읽기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전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읽기를 통해 얻던 막연한 위로가 어떤 정체의 것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요즘 읽기를 하지 않았다. 책 읽기, 글 쓰기, 음악 듣기, 산책하기, 미술관 가기, 영화관 가기, 그림 그리기 - 혼자서 천천히, 잔잔하게 즐겼던 모든 취미를 멈추었다. 삶이 바빠서일 수도 있지만 그건 사실 핑계다. 대신 쉬는 시간에 누워서 유튜브나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다른 복잡한 생각 없이 웃고 넘긴다. 그 속에서 메말라감을 느끼지만 그냥 내버려두고 싶은 기분이랄까. 글쓰기 수업을 듣기로 한 것도 이런 곤고함 속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오랜만에 책을 읽고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음악도 틀어보았다. 이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내 하루는 더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처럼 바쁜 일상 속에서 이 읽기와 쓰기의 행위가 나를 잡아주는 닻이 되길, 그것이 언젠가 세상 속 작은 혁명의 불씨가 되길 바라 본다.
_내가 저자라면
책에 인용된 수많은 문구를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만으로 즐거웠을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썼던 문장을 몸과 영혼에 체득하고, 모순은 모순대로 남겨두고, 때론 반박하고, 때론 재구성하고, 작가가 소개했던 수많은 읽기의 과정을 통해 이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읽기의 말들이 무수한 읽기의 경험을 통해 나왔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 덧붙이자면 1장부터 120장까지 단편적인 글의 나열도 좋지만 내가 저자라면 뭐라도 소제목을 붙여 이 글들을 분류하고 싶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의 경험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싶은 나의 욕구일지도. 하지만 작가를 떠난 글은 다양한 사람들과 제 나름의 관계를 맺어가기에, 오히려 지금의 형식으로 독자의 머릿속에서 다양하게 구성되는 편이 (실제로 내게도 재미있었고)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
_공명하는 글 또는 책"책에 감싸이고 싶을 때, 책 속에 거하려고 온 사람들 속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인간이 밎은 공간 중에 책방만큼 방문객이 풍경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도 없다." (52장)
책은 아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인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생각이 났다 (소설이 원작이라는데 드라마로 봤다 😅). 치열한 삶에 지친 여주인공이 시골 이모집에 머물면서 그 동네 책방을 중심으로 모이는 여러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추운 겨울 외로운 시골 풍경 속에서 책과 사람들이 한 데 어루러진 책방의 공간이 묘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_반짝이는 구절
독서는 삶을 바꿔 주지 않지만 더 근사한 것을 준다.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독서가 야속하고도 고마운 이유다. (3장)
책을 도구화하면 언젠가 당신도 도구로 취급될 날이 온다. 그것이 책의 저주요, 반격이다. 반면 책에게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랑하면 내가 구하지 않은 성공이나 인품 같은 것까지 덤으로 준다. (12장)
책에서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우리네 가슴이 뛰는 까닭은 이전에 몰랐던 사실에 눈을 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지니고 있거나 적어도 내 영혼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이쓴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흥분하는 것이다. (20장)
독서는 저자가 책에 쏟아부은 피와 찢어 붙인 살로 나를 먹이고 기르는 행위다. 먹는 행위는 종종 기억하는 행위와 결부된다. (24장)
모든 창조적인 독법은 과연 오독의 산물이다. 그런 독법의 구사자는 책을 읽어 내려가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책을 써 내려간다. (39장)
인생길이 그렇듯 독서의 순례길에도 바랑을 질 때가 있고 놓을 때가 있다. 두루 섭렵하고자 무거운 책보를 바리바리 이고 걷는 구간이 오는가 하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줄 몇 권만을 반려로 삼는 계절이 온다. (45장)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책이 나를 읽고, 내가 책을 소화하는 동안 책이 나를 소화하고, 내가 책에 밑줄을 긋는 사이 책이 내게 밑줄을 긋는 독서 . . . 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텍스트라는 직물을 짜는 동안 텍스트가 이내 삶을 짠다. 그렇게 저자와 상호작용을 경험한 텍스트는 독자와의 관계에서도 읽히기만 하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독서가 책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동안 책도 독자를 해체하고 새로 반죽하고 빚어간다. 책이 일종의 유기체처럼 꿈틀대면 살아 있다고 느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다 (54장)
묵독의 시대에도 소리 내어 읽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텍스트를 만난다. 아니 자기가 먼저 육성으로 옮겨 달라고 아우성치는 문장을 만난다. 그 요청에 응답하면 안다. 세상에는 구강을 통과해야 자신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있음을. (58장)
상류층의 욕망을 비웃으며 “그런 건 개나 줘 버려. 난 생긴 대로 살 거라구”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못난이들이야말로 체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위협이 된다. 내가 책을 사랑함은 그런 못난이의 대열에 합류할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65장)
이미 문자 위에 구축해 온 삶을 허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끔은 활자를 매개하지 않고 만물을 읽도록 몸에게 독서를 내어 줄 필요가 있다. (66장)
그림책은 읽어 주는 책이다 . . . 귀로 이야기를 듣는 동시에 눈으로 그림을 봐야 진정한 그림책 체험에 도달하고 이 체험을 했을 때 그림책의 본질에 닿는다. (74장)
책읽기가 사치가 된 시대에 독서는 정치적 실천이다. (78장)
수용소에서 몸 씻기는 ‘헬조선’에서 책읽기로 변환된다. 독서를 배부른 짓으로 간주하는 시대일수록 책을 놓지 말아야 한다. (85장)
누군가에게 추천할 책을 고민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행위다. (92장)
‘홀리’ 바이블은 ‘언홀리’한 책을 경유해야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난다. 신의 거룩함이 세상의 속됨에서 가장 즐겨 드러나듯이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숱한 세속의 책’을 통해 읽히지 않으면 종교 전쟁, 인종 말살, 자연 파괴 등을 정당화하는 악마의 책이 됨을 역사는 거듭 확인해 준다. (93장)
처음부터 끝까지 반짝이는 문장으로 가득 찬 책이 아니라 독자가 지루함을 감내하게 하는 작품과 저자가 웅숭 깊다. . . 어떤 의미에선 책에서 무엇을 얻어 내느냐가 아니라 책 읽는 행위 자체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책을 읽는 평범한 시간 자체가 나를 보듬고 싸매 준다. (98장)
“네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그냥 그 말들이 네 온몸을 촉촉하게 적시게 내버려 두는 거야. 음악처럼 말이다.” 로알드 달, <마틸다> (101장)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나 주권 탈취가 아니라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 사사키 아타루 (105장)
세상의 모든 독서는 자신을 혁명하고 세상을 혁명하는 고공할 잠재력이다. (105장)
자신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바보처럼 느낀다. 사안이 첨예하게 대립할수록 ‘네 위치가 어딘지 정해!’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즉각적인 지식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안다. 세상이든 자신이든 모순과 역설의 덩어리라는 사실을. (106장)
보행은 지구별을 읽는 독서이면서 나아가 저항과 치유의 몸짓이 된다. (112장)
신의 두 번째 책, 그러니까 이 세상이라는 책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 책에서 인간은 하나의 활자이자 등장인물이다. (113장)
책은 눈으로 옮김과 손으로 읽음이 확실히 다르다 . . . 옮겨 적는 만큼 내 문장이 됨을 나 역시 경험으로 터득했다. (115장)
독서는 마땅히 지녀야 할 공포를 품고 살도록 격려한다. 여린 영혼들과 미물들이 상처 받을까 졸이는 가슴을 주고, 사회적 약자가 팽팽한 생존의 줄을 ‘툭’하고 끊어 버릴까 겁을 내게 해 준다. (116장)(읽기 과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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