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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포함)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20)책, 영화 리뷰 2021. 7. 28. 13:35
대학교 때 영화로 먼저 접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하 조제)이 미국에서 최근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영 마지막날 부랴부랴 예매를 했다. 《조제》는 꿈과 사랑 사이에서 방황하고 성숙해져 가는 20대 청년들의 이야기, 어떻게 보면 《라라랜드》의 일본판과도 같은 영화다. 2003년 개봉되었던 영화는 한국에서 기대 이상의 많은 관객수를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간은 우울했던 영화로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영화관에 걸린 애니메이션 포스터는 어쩐지 굉장히 밝아 보였다.
꿈 꾸는 두 청년
조제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가는 장애인이다. 그녀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는 바깥에 호랑이들 (*세상 밖 조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여러 요소들을 상징) 천지라며 손녀를 집 안에만 두고자 한다. 하지만 조제는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소유자. 그녀의 이름 또한 그녀의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 조제의 본명은 쿠미코지만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 속 여주인공 '조제'로 불리길 원한다. 실제로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작품의 여주인공인 조제는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프랑스 파리에 살며 그때 그때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고 파격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쿠미코의 작은 방에서 벗어나 조제가 되어 온 세상을 누비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영화 속에서 조제는 작은 방 안에 갇혀서도 세계 곳곳의 명소들을 그림으로 그려내며, 불편한 두 다리 대신 지느러미를 단 인어가 되어 물고기들과 함께 바다 속 도시를 자유롭게 헤엄치기를 꿈꾼다.
츠네오는 바다를 너무 사랑해서 해양생물학을 전공하며 다이빙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다. 어린 시절 수족관에서 본 멕시코 태생의 물고기를 직접 보기 위해 멕시코 유학을 꿈 꾸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 중이다. 우연한 기회에 조제의 생활을 보조하는 아르바이트까지 하게 된 츠네오는 조제가 오랫동안 바라기도 하고 두려워 했던 많은 일들을 함께 한다. 그토록 그리던 바다에 가서 직접 바닷물의 짠 맛을 보기도 하고, 동물원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호랑이와 마주하기도 한다. 집안에 갇혀 혼자 그림만 그리던 조제는 츠네오를 통해 세상과 점점 소통하며 어느덧 많은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일을 꿈꾸기 시작한다.
현실의 벽 위를 날다
하지만 그들에게 현실 벽이 성큼 다가온다. 조제의 유일한 부양자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거기에 덩달아 츠네오가 이듬해 3월에 유학을 가게 되었다는 소식까지 전해듣자, 조제는 꿈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꿈을 떠나 보내기 위해서였을까,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바다에 가지만 곧 다투고 만다. 화가 난 조제는 무리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위험에 빠지고, 그런 그녀를 구하려다 오히려 츠네오가 차에 치이게 된다. 츠네오는 이 교통사고로 전처럼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고 멕시코 유학을 포기한다. 그 또한 꿈을 잃는다.
절망에 주저 앉아버린 츠네오를 이번에는 조제가 찾는다. 츠네오를 도서관에 초대해 자신이 그린 동화책을 읽어 준다. 인어공주 이야기에 착안한 인어와 날개를 가진 한 청년의 이야기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간이 되길 꿈꿨던 인어는 조개껍데기에게 소원을 빌어 두 다리를 얻는다. 인간 세상에서 인어는 무서운 호랑이를 만나지만, 새하얀 날개를 가진 청년이 그녀를 구해 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많은 추억을 만든다. 청년의 꿈은 그 하얀 날개로 빛의 바다에 가는 것이다. 하지만 인어는 어느날 호랑이와 다시 맞딱뜨리게 되고, 청년은 인어를 구하다가 심하게 다쳐 소중한 날개마저 꺾여버리고 만다. 인어는 다른 소원을 빌면 거품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조개껍데기의 경고를 무시한 채, 청년을 낫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 소원대로 청년은 건강을 회복하지만 그의 날개만은 돌아오지 않는다. 청년은 날개 없이 빛의 바다에 갈 수 없다며 절망한다. 그런 그에게 인어는 청년의 마음 속에 있는 날개가 인어 자신을 구원해 왔고 그 또한 구원할 것임을 일깨워 준다. 결국 청년은 마음 속의 날개로 배를 타고 빛의 바다에 도달한다. 한편 인어는 자신이 거품으로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조개껍데기는 타인을 위해 소원을 빈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인어에게 지느러미를 돌려준다. 인어는 청년과의 추억을 품고 바다로 돌아간다.
이야기 속 청년은 결국 마음 속의 날개로 현실의 벽을 넘어 꿈에 이르고, 인어 또한 거품으로 사라질 운명을 거슬러 바닷 속으로 자유로이 헤엄쳐 간다. 결국 인어와 청년의 이야기는 조제가 츠네오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격려의 표현이다. 조제의 이야기를 통해 마음 속의 날개를 발견한 츠네오는 다시금 재활 훈련에 매진하고 마침내 걸을 수 있게 된다. 퇴원하는 날 츠네오는 그를 떠나려는 조제에게 극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이듬해 봄 츠네오는 멕시코로 유학을 떠나고 조제는 그림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그리고 1년 후 둘은 길 위에서 재회한다.
Coda.
이렇게 애니메이션 속 조제와 츠네오는 꿈과 사랑 모두 이루며 스토리에 기분 좋은 마침표를 찍는다. 아니나 다를까 엔딩크레딧이 올라오자 관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대학 시절 보았던 영화 속 츠네오의 모습이, 그럭저럭 잘 영위하던 일상 가운데 문득 조제를 떠올리며 사랑으로부터 비겁하게 도망쳤다며 오열하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더 아른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국 2003년의 《조제》가 꿈과 사랑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만 했던 아픈 청춘의 기억을 그렸다면, 2020년의 《조제》는 그런 아린 기억의 끝에 두손을 맞잡은 또 다른 조제와 츠네오가 서 있을 거란 희망을 그린 것인지도 모른다. 두 영화는 단순히 20대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네 인생에서의 꿈과 현실 사이, 그 간극과 접점을 오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쪽에 더 공감할지는 각자가 겪고 있는 인생의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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