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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놀랍게도 최근 들은 말씀들을 통해 때에 맞게 응답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순종의 모습은 주님께서 말씀하시기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것이다. 출애굽기 32장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증거판을 받아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출애굽기 32:1)이 말씀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잠시도 인내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한심하게 보였다. 하지만 다시금 찬찬히 묵상하다 보니 그들의 모습 안에 나의 모습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때에 하나님의 응답이 보이지 않을 때, 끈기있게 기다리기보다 다른 우상을 택하며 내 경험, 내 욕구에 의지해 멋대로 행동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올해 계속해서 잠잠히 기다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굳게 붙들고 순종하라 주시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순종의 모습은 말씀하시기 이전에 그 말씀이 무엇이든 따르겠다는 믿음의 결단이다.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오랜 세월을 인내한 끝에 약속의 응답으로 받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명하신다. 흥미로운 점은 명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아브라함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세기 22:1)여기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히네니'로, '준비되었으니 말씀만 하십시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종이 주인의 명이 무엇이든지 따를 준비를 마친 이후에 하는 대답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도 전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백하며 어떤 명령이든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일지라도 말이다. 실제로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떠난다.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직전 여호와의 사자는 다급히 아브라함의 이름을 두번이나 부른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세기 22:11)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한결 같이 차분하고 결연하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아브라함의 순종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그제서야 이삭을 대신할 숫양을 준비해 주시고 그를 향한 주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아브라함의 모습과는 반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구하면서도 정작 어떤 말씀이든 따를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을 때가 많다. 우리가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기다리게 하시고 대답을 지연하시는지도 모른다.
이 말씀을 통해 최근의 여러 고민들 가운데 나는 어떠한 방향이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멈추라고 하시면 멈출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 모든 소망과 소원, 나의 이삭을 내려놓고 내 전 존재를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순종의 마음이 있는가를 주님은 묻고 계신 것 같다. 그래서 여전히 두렵지만 이제는 주님의 길이 가장 선한 길임을 알기에 어떤 말씀이든 따르겠다고 먼저 믿음으로 고백하고자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기까지 다른 우상을 바라거나 욕심대로 행동하지 않겠다 결단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말씀해 주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