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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설교를 듣다 시간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게 되었다. 헬라어로 '시간'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먼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 '크로노스' (Χρόνος)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인생에서 어떤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위안을 삼는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결국 물리적 시간의 흐름 속에 희미한 과거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인 '카이로스' (Καιρός)는 원어적으로 '기회,' '새기다'라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흐름 속에서 한번 놓치면 붙잡을 수 없는 유의미한 기회의 시간을 뜻한다. 그 유의미한 시간은 단순히 과거에 그치지 않고 우리 마음에 새겨져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어릴 적 친구, 은사 혹은 중요한 누군가와의 만남이 지금의 내 모습에 영향을 주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이 2000여년의 크로노스적 시간을 넘어 현재 나의 삶 가운데 역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라고 말한다. 에베소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엡 5: 15-16)이때의 '세월'은 카이로스이다. 또한 '아끼다'라는 말의 원어는 '절약하다'라는 뜻이라기 보다 '구하다'라는 뜻에 가깝다. 따라서 이 구절의 의미는 하나님 안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건져내라'는 뜻이다. 물리적 시간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계속해서 흘러가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깨어있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들을 유의미한 시간으로 건져내야 한다. 그렇게 카이로스적 시간을 바라볼 때 우리의 관심은 세상 속에서 '얼마나 때가 이르고 늦는가'에서 '지금의 이 시간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로 옮겨 간다. 그것이 에베소서 저자가 말하는 삶의 지혜이다.
요즘의 내 관심은 "때"에 있었다.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언제 직장을 옮길지, 언제 결혼을 할지 등을 고민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긴 했지만 결국은 그 때의 이르고 늦음에만 온 신경이 가 있었다. 세상과 다르지 않은 크로노스의 시간만을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시간 가운데 하나님의 일하심을 적극적으로 발견하며, 또 이미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내 시간과 마음을 드리는 일에는 무관심했다. 유의미한 시간을 건져내며 지금 현재를 살아낼 때, 즉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그 이외의 것들을 주님께서 알아서 하실 텐데 말이다 (마 6:33).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됨에 감사하는 동시에 내 자신에 대한 불신 또한 스멀스멀 올라온다. 머리 속으로는 알지만 또 알고 있는 것을 살아내는 것은 다른 일일 터이다. 하지만 내 자신에 대한 불신은 곧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결국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내 믿음의 부족함부터 고백해야 겠다. 내 연약함을 고백할 때 채워주실 하나님을 믿는다.